[북아현동] 텅 빈 빨래줄에 걸린 햇살의 시간
2010. 2. 4. 14:59ㆍ서울여행 큐레이터
사진으로 잘 표현됐는지 모르겠지만, 이 사진을 찍으러 나간 날은 정확하지는 않아도 '몇 십년 만의 최고' 라던가? 이번 겨울중에 제일 춥다던가?'하고 방송에서 고함을 질러대던 오후였다.
하지만 제 아무리 추워도 육군 병장으로 제대한 내게 (아니 한국의 모든 예비역들에게) 이겨내지못할 추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영하 20여도를 넘나드는 추위 속에서 잠을 자고, 이동을 하고, 막사를 치고, 게다가 꼭두새벽에 알통구보를 하면서도 살아남지 않았던가.
2010년 새해를 맞이하는 북아현을 기록하기 위해, 그리고 추위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는 불굴의 사진전사(戰士)임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 골목길을 걷다보니 어느덧 오후가 되어있었다.
오후는 마법의 시간이다.
그 시간 안에 세상은 녹아내리는 치즈마냥 누적누적해지고, 쌀쌀한 마음마저 너그러워진다.
김정일도, 오사마도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허리띠를 풀고 자연이라던가, 신에 대해서라던가, 어릴 적에 단짝이던 친구들의 근황이라던가,혹은 먼저 떠난 후세인에 대하여,아니면 할머니...그렇다. 할머니에 대해서 생각을 할 것이다.
이게 다 오후의 마법 덕분이라고 한다면, 오후가 조금쯤 길어도 세계 평화를 위해서 해로운 일이 아닐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날 오후에 나는 또 다른 마법을 보게 되었는데, 빨래줄에 걸쳐있는 햇살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저 멀리 멀리에서 날아오느라 고생 고생한 햇살이란 것이 북아현의 빨래줄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는, 그런 따스함을 보게 되었다.
여전히 방송에선 지구에 종말이 다가오듯 대단한 추위라고 함성을 질러대고 있었지만, 그건 말들은 전부 대관령 목장에나 가둬버려야할 말에 지나지 않았다.
여전히 오후는 따사로웠고, 빨래줄은 너그럽게 햇살에게 자리를 내어주던 그런 날의 북아현을 나는 그래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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