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카메라(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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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행, 남산] 그많은 남산 이야기는 전부 어디로 갔을까?
1. 남산은 거기 있다. 아주 어릴 적에 나는 어느 일요일 아침에 할머니 할아버지 이하 가족들과 아침 밥을 먹다가 당연하다는 듯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따가 동물원에 가요" "왜? 뭐 보고 싶은게 있어?" "갑자기 용이 보고 싶어요" 그리고 나서, 용이 어떻게 동물원에 있냐는 가족수 곱하기 서너마디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차, 용은 거기 없지...'하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그 날 이후부터 나는 용을 꼭 보고 싶다. 우리 할아버지는 퇴임 직전의 몇년 동안을 지방에 계셨기 때문에, 할머니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나를 시골에 데려가셨다가 한 달 정도 뒤에 서울로 데려다주시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셨다. 아무래도 혼자 계시기 심심하시니까, 남아선호사상의 선두 주자였던 할머니로서는 [손자] 자랑..
2010.04.22 -
[서울여행, 만리동과 아현동 고개] 사라졌다고 지워진 건 아니야. 기억할 때까지만 존재해줘
1. 부덕이 만리동 고개를 무척이나 아끼는 나는 그동안 숱하게 오르락 내리락 하였다. 오래전의 나에게 만리동 고개는 여러모로 유용한 길이었다. 무엇보다 집에서 충무로까지 가기 위해서는 마포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만리동을 넘어서 가곤 했다. 만리동 고개를 기웃거리던 어느 늦가을에, 나는 작은 화단이 예쁘게 단장된 한 주택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화단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빨래줄의 집개가 보기에 이뻤다. 이때는 니콘 FM2로 찍었기 때문에 한참동안 구도를 잡고, 노출값을 측정하고 있을 때였는데, 저 멀리 언덕 아래에서 나를 향해 이런 소리가 들렸다. 사실 말이 '소리'이지 실상은 고함에 가까웠던 그 말인즉, '거기서 뭐하는겨?' 나는 뭔가 잘못을 저지른 줄 알고, 짐짓 쫄은 티를 내면서...(살다보면 이런 ..
2010.03.18 -
[서울여행, 회현시범아파트] 회현 시범 아파트에서 눈에 멍든 사진을 남긴 사연
1. prologue 벌써 7년 정도 지난 일이다. 2002년 여름, 나는 대안학교 여름캠프 봉사자 자격으로 2주동안 변산에 다녀온 일이 있다. 그 곳은 윤구병 선생이 세운 대안학교와 공동체 마을인데 나는 변산에 머물던 2주동안 대안학교보다도 공동체 마을의 모습에 더 큰 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너무 오래된 일이라서 마을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아니, 이름이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공동체 마을이라도 부르는건 오직 내가 받은 인상 때문이다. 변산 시내에서 시외 버스를 타고 약 한 시간 쯤 들어가면, (변산이란 지역이 그다지 넓지는 않은 것 같은데, 차량의 왕래가 거의 없는 도로를 한 시간이나 내달린 곳도 역시나 변산이라 불리는 마을이었다.) 바다와 근접한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있다. 그리고 그 마을 한..
2010.03.08 -
[서울여행, 홍제동 개미마을] 시간의 흔적이 켜켜히 쌓인 동네가 보고싶다면...
개미 마을에 관한 글을 쓰려고 한다. 그리고 이 사진들은 최근의 개미마을 사진은 아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연탄길] 내가 처음 개미마을을 갔을 때는 늦겨울, 혹은 이른 봄이었다. 어디선가 그런 마을이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물어 물어 찾아갔던 마을에서 내가 받은 첫 인상은....삶의 조건이란 참 다양하구나...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이 마을에 대해서 어떠한 동정 같은 건 없었다. 이 사진들은 FM2와 니콘 D50으로 찍은 사진들인데, 특히 이 연탄길은 FM2로 찍은 사진이고, 이 장면을 잡기 위해 나는 이 길에 거의 엎드려서 찍은 기억이 안다. 사람 한 두명 정도 지나 다닐 수 있는 길가를 이렇게 연탄으로 장식한다는 생각이 참 재밌는 풍경이다. 개나리가 필 무렵의 개미 마..
2010.03.04 -
[마포 만리동] 재계발과 함께 사라져간 아이의 고향
오늘은 약간 작은 사진을 올려본다. 사실 이 사진은 잘 찍은 장면이 아니다. 아이의 양손이 화면 밖으로 나가있어서 웬지 어색한 느낌을 준다. 이 사진을 찍게 된 소이연은 이렇다. 몇 년전부터 나는 마포 만리동 고개를 다니며 사진을 찍어왔다. 다행히 그 때는 학생 시절이어서 시간에 여유가 많았던 터라 동네사람들이 활동하는 시간에 만리동을 걸어다닐수 있었다. 하루는 내가 연작으로 기록하는 집 앞을 지나가는데, 웬 꼬마가 다가오더니 카메라 한번 쳐다보고 내 얼굴 한번 처다보기를 수줍게 여러번 반복하며 내 주위를 뱅뱅 도는거였다. 아마도 자기 딴에는 처음보는 사람이 무언가 들고 있으니 호기심이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나더니, 집으로 들어가 할머니를 끌고 나왔다. '무슨 사진 찍으시는거예요?' 할머니가 물어보셨다...
2010.02.09 -
[서울 여행, 인사동] 이별, 그 후에 남겨진 말들
이별은 추위와 같다. 여러가지면에서... 늦가을의 애매한 경계 근방에서 우리는 조금씩 쌀쌀해오는 공기 속을 걸으며 '아직은 가을이라서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가을에 조금이라도 더 남아있으려고 한다. 어제보다 조금 더 차가워진 날씨에도, '음 늦가을치곤 조금 쌀쌀하다'며 여전히 가을에 남아있으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고 여지없이 일기예보는 빗나가고 아직까지 가을 옷을 입고있던 패션피플들이 온 몸으로 추위를 견뎌낼 때쯤에서야 비로소 겨울이 되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물론, 그 때에는 '갑자기 겨울이 찾아왔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선은 무지개에서 빨과 주와 노, 초, 파, 남, 보의 경계를 찾는 일 만큼이나 애매하고 모호하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는 매번 ..
2010.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