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25. 18:04ㆍ서울여행 큐레이터
만약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따봉'이 무슨 뜻인지 아는 분이 있다면 그건 분명히 아래 두 가지 중에 하나일 것이다.
1.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유식하다.
2. 나이가 많다.
그리고 대체로는 두번째에 해당할 것이다.
그렇다.
따봉을 아는 당신은 이제 적지 않은 나이이다. (물론 당신 스스로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아래를 보라. 당신을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이 백만대군이다)
따봉이란, 오래전에 대히트했던 광고에서 나온 유행어로 '좋다'는 뜻의 포르투갈어이다.
뜬금없이 포르투갈이라니....
게다가 나는 포르투갈은 커녕 유럽 땅을 밟아본 일이 없는터라 포르투갈이라는 단어조차도 생경하다.
.....................
북아현동은 걷기 좋은 동네이다.
요즘에야, 온라인 마켓이 소셜커머스로, 사진촬영의 고급 테크닉이 감성으로, 그냥 휴식이 힐링으로 대체되어 사용되고있지만,
세월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때에, 북아현동은 내게 그야말로 힐링의 골목이었다.
그 시절, 나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았을까?
어디가 아픈지 알아야 치료도 가능할터인데, 그 때의 나는 그냥 아팠다.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채 그냥 무턱대고 아팠다.
그래서 말이지, 제대로 된 치유를 할 수가 없었다.
어디에서 오는 분노인지, 무엇 때문에 우울한 것인지 알아낼 틈도 없는 막막하고 깊은 어둠속을 견뎌내던 내 나이 20대 후반에 나는 북아현을 걸었다.
터벅 터벅 걷다보면, 조금은 숨이 트이는 기분도 들고, 다리가 아프면 때때로 인테리어가 형편없고 맛까지 그 수준인 카페에 무작정 들어가 멍하게 앉아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들이 가장 적확한 의미의 힐링이었을 것이다.
북아현동이라고 뭐 대단한게 있으랴?
그냥 사람사는 동네이고, 서울의 어느 한 지역일 뿐이지.
하지만 조금 다른 구석이 있다.
골목.
그렇다. 골목이 다르다.
아파트 세대들은 잘 모를 수도 있는데, 골목은 반쯤 인격이 있다.
사람처럼 신생해서 사람과 함께 늙어가고, 결국 사람처럼 끝을 맞이하는 길이 골목이다.
골목은 집과 집 사이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여, 이 집의 이야기와 저 사람들의 사정을 받아준다.
안이 아니면 밖이라는 식의 매서운 이분법이 아니라, 안과 밖 사이에 이른바 공동체적인 휴식지대가 골목이다.
사람들은 골목에 나와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은 골목을 놀이터 삼아 어린 시절을 여문다.
골목 사이 사이에는 그 골목이 숨겨놓은 이야기들이 있다.
버려진 것들, 누군가 붙이고간 광고 전단지, 때로는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이 가슴 졸이며 낙서해둔 '삐약삐약' 같은 서툰 글들...
골목은 너그러워서 이 모든 것들은 엄마의 가슴처럼 보듬어준다.
그리고 북아현의 골목이 특히 그렇다.
......................
따봉 이야기로 시작해서 뜬금없이 북아현 이야기로 이어졌다.
어느 겨울, 나는 또 북아현을 걷고 있었다.
그냥 걸었는지, 마음이 아파서 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걷다가 걷다가 걷다가 걷다가... 그냥 걷.다.가.
나는 따봉식당 앞에 섰다.
따봉이라....
초등학생때 담임 선생님 이름마저 가물가물해진 이 때에 그 시절에 유행하던 빅히트 유행어 '따봉'.
게다가 마치 우리 모두의 삶이 따봉이기를 바란다는듯이 가게 앞에 쌓여있는 따봉 철가방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야 임마, 니 인생도 따봉이야, 이 짜식아.
그 순간 누른 셔터가 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지금 힐링이 필요한 모두에게 이 사진을 선물한다.
당신 인생도, 따봉이니까 말이다.
'서울여행 큐레이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 여행, 홍대 놀이터] 놀이터 화장실 지붕 위에 뭐가 있었을까? (1) | 2014.08.16 |
---|---|
[서울여행] 북아현동에서 우리 인생 따봉! (1) | 2012.05.25 |
[서울여행, 홍대] 별이 빛나는 골목을 만나다 (0) | 2012.05.21 |
[서울여행, 북아현동] 호기심 많은 토끼, 바다 속으로 들어가다 (0) | 2010.05.11 |
[서울여행, 남산] 그많은 남산 이야기는 전부 어디로 갔을까? (17) | 2010.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