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8. 01:06ㆍ서울여행 큐레이터
김창완의 노래 중에, '한밤중에 목이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 코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보다 소금에 절여놓고 편안하게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 구일 먹을 수 있네 '라는 가사의 '어머니와 고등어'라는 노래가 있다.
어느 C.F에선가 듣고서는 가사와 음이 재밌어서 몇 번 불렀던 기억이 나는 이 노래를 시간이 조금 지나고 떠올려보니, 냉장고에 들어있는 고등어 하나도 심상치 않게 발견하고 그걸로 곡을 만든 김창완의 재주가 놀랍고 부러울 때가 종종있다.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도 그것이 역시 평범한 사건을 비범하게 만들어내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사진도 무릇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어머니와 고등어가 생각난 것은, 이 사진이 바로 어머니와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까지 어머니,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데, 여하튼 일요일 오후.... 여전히 자기 일이 많은 우리 집 식구들은 나를 빼고 전부 밖에 나가있었다.
점심 때에 맞춰오겠다던 엄마는 (성당)회의가 길어졌던지 도무지 올 기미가 안보이고, 점차로 내 영혼을 잠식하는 배고픔의 기운을 막아내려 냉장고를 열기 위해 안방을 슬쩍 지나쳤는데, 안방 창문 밖으로 아스라한 색이 멋지게 장식되어있는게 보였다.
그것은 베란다에 널어놓은 수건들이었는데, 회색톤 창문 넘어로 빨갛고 노랗고 파랗고, 또한 녹색인 수건들이 일렬로 늘어져있는 것이었다.
(엄마는 일부러 저렇게 빨아서 널은걸까? 그러고보니 '창문넘어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라는 김창완의 곡이 웬지 '창문 넘어 어렴풋이 수건들이 보이지요'로 치환된 느낌이 든다. 별 것에서 김창완과 연결되는 괴이한 일이 벌어졌군...)
아, 성당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그래서 나는 라면을 끊여야되는......그렇지만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찌개와 국과 서너가지의 반찬까지 식탁에 차리고 나간...... 엄마가 빨래를 했나보구나.
그렇다면 '나는 내일 아침에는 빠짝 마른 수건으로 머리를 닦을 수 있네~ '라는 '어머니와 수건빨래'는 곡이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이런 사진을 찍고 싶다. 누구에게나 일어나지만, 내 사진으로 새로워지는 그런 장면을 말이다...
유독 일요일 오후에 유성스프가 빛나는 짜파게티를 끓여먹기 몇 분전에, 나는 엄마와 수건빨래와 사진에 관하여 가히 김창완적인 생각을 하며 1/100초를 할애하여 이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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