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만리동] 재계발과 함께 사라져간 아이의 고향

2010. 2. 9. 10:43서울여행 큐레이터


오늘은 약간 작은 사진을 올려본다.

사실 이 사진은 잘 찍은 장면이 아니다. 아이의 양손이 화면 밖으로 나가있어서 웬지 어색한 느낌을 준다.

이 사진을 찍게 된 소이연은 이렇다.

몇 년전부터 나는 마포 만리동 고개를 다니며 사진을 찍어왔다. 다행히 그 때는 학생 시절이어서 시간에 여유가 많았던 터라 동네사람들이 활동하는 시간에 만리동을 걸어다닐수 있었다.

하루는 내가 연작으로 기록하는 집 앞을 지나가는데, 웬 꼬마가 다가오더니 카메라 한번 쳐다보고 내 얼굴 한번 처다보기를 수줍게 여러번 반복하며 내 주위를 뱅뱅 도는거였다.

아마도 자기 딴에는 처음보는 사람이 무언가 들고 있으니 호기심이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나더니, 집으로 들어가 할머니를 끌고 나왔다.

'무슨 사진 찍으시는거예요?' 할머니가 물어보셨다.

'이 동네 골목을 찍고 있습니다. 조만간 재계발되면 못 볼 풍경이잖아요'

할머니와 재계발에 관해서, 만리동에서 사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 꼬마는 자꾸만 내 카메라에 관심을 가지고, 그러나 내게 가까이 다가오지도 , 멀리 떨어지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거리에서 카메라가 신기한 듯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었다.

'사진 한장 찍어줄까?' 

그러자 옆에서 할머니가 '그래, 이쁜 표정 한번 지어봐라'하고 거들어주셨다.

나와 할머니의 권유에 고무된 아이는 신이 난듯 찡끗 눈을 감아 주었는데, 아쉽게도 이 날 내가 가지고 간 카메라는 FM2였다. 그러니까 AF가 되지 않는 완전 수동 카메라.

나는 프레임을 잡을 겨를도 없이, 아이의 표정만을 바라보며 마이클 조던의 페너트레이션(penetration)과 같은 스피드로 조리개, 셔터스피드, 포커스를 맞춰 찍게 된 것이다.

때는 한 여름이었고, 민소매에 고추를 달랑거리던 이 아이와 할머니는 골목 그늘에서 외지인이 드나드는 걸 구경삼아 더위를 잊었으리라.

그리고 100년 만에 폭설이 왔다는 올해 겨울, 이 아이의 호기심 눈처럼 빛나던 날의 이야기 따위야 드라이아이스마냥 소리없이 날아가려도 좋다는듯이, 어느 새 사라버린 공터에 눈만 잔뜩 쌓여있었다.

눈이 많이 와서 기분이 좋으면 또 저렇게 눈을 찡긋거릴 아이가 어디선가 눈사람을 만들며 의기양양하게 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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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FM2, ILFORD , Film Scan - 사진이 작은건 필름 스캔할 때 스캔시간을 줄이기 위해 용량을 줄여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