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행, 마포구 만리동] 노란 자전거가 있는 노란 햇살 비친 골목길 풍경

2010. 2. 11. 10:27서울여행 큐레이터



이 장면은 내가 사진에 대해서 잘 모를 때 찍은 사진이다. (하긴 이 때나 지금이나 잘 못 찍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만리동이 재계발로 무너지기 전에, 그 곳을 좋아했던 나는 틈만 나면 만리동으로 사진 나들이를 다녔었다.

사실, 동네 주민들에겐 삶의 공간인 골목을 외지인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건  미안한 일이기도 하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이 골목을 기억하겠나?  혹여 사진 찍는다고 박해를 받더라고 일종의 사명감으로 찍겠다는 순교자적인 심정으로 무던히 오르내렸던 길이다.

다행스럽게도, 어쩌면 만만하게 생긴 얼굴과 루저중의 루저인 내 키 때문에 경계심이 사라졌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골목의 주민들은 언제나 의심없이 인사를 받아주시고, 사진 촬영에 관심을 가져주셨다.

골목 사진을 찍다가 느끼게 된건데, 골목에도 사람의 인생처럼 좋은 시기가 있고 나쁜 시기가 있다. 청춘을 거쳐 중년을 지나면  비로소 골목은 스스로 소멸한다.

나는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만리동과 처음 만났었고, 이제 이 길은 스스로 소멸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계획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해서,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추억할 때처럼 사진을 꺼내들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사진 속의 할머니는 [할머니]의 나이가 아니라 [중년]의 나이다. 그리고 그 속의 나는 갓난 아기거나 혹은 슈퍼맨 따위가 지구를 들었다 놓는다고한들 까짓거 아빠나 할아버지한테 일러바치면 만사가 그만인 진짜 [슈퍼]맨의 꼬마 아이이다.

사진 속의 할머니에게 '이 시절의 나는 어떤 인간'이었는지 물어보면 불쑥 그 속에서 대답을 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이미, 세상에 없는 할머니를 나는 그렇게 추억하며 그 시절의 나를 발견한다.

또한 이미 세상에 없는 이 골목을 나는 이렇게 사진을 바라보며 추억하고, 그 시절 이 골목에 흘렀던 시간을 다시 느끼곤한다.

이 골목에 드는 햇살을 맞으며 자기가 [슈퍼]맨인줄 알았던 꼬마들의 철없음과 그 놈들에게 진짜로 [슈퍼]맨이었던 부모들은 더 큰 [슈퍼]파워들에 의해 쫓겨나고 밀려나버렸다.

이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노란 자전거의 체인 굴러가는 자갈자갈한 소리와 이 골목을 굴러다니던 압력 밥솥의 기찻소리와 찌개 냄새가 느껴진다.

............................................
Nikon F5, 필름스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