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행, 만리동과 아현동 고개] 사라졌다고 지워진 건 아니야. 기억할 때까지만 존재해줘

2010. 3. 18. 09:30서울여행 큐레이터


1. 부덕이

만리동 고개를 무척이나 아끼는 나는 그동안 숱하게 오르락 내리락 하였다. 오래전의 나에게 만리동 고개는 여러모로 유용한 길이었다. 무엇보다 집에서 충무로까지 가기 위해서는 마포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만리동을 넘어서 가곤 했다.

만리동 고개를 기웃거리던 어느 늦가을에, 나는 작은 화단이 예쁘게 단장된 한 주택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화단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빨래줄의 집개가 보기에 이뻤다.

이때는 니콘 FM2로 찍었기 때문에 한참동안 구도를 잡고, 노출값을 측정하고 있을 때였는데, 저 멀리 언덕 아래에서 나를 향해 이런 소리가 들렸다. 사실 말이 '소리'이지 실상은 고함에 가까웠던 그 말인즉,

'거기서 뭐하는겨?'

나는 뭔가 잘못을 저지른 줄 알고, 짐짓 쫄은 티를 내면서...(살다보면 이런 연기가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 한두번쯤 찾아온다)

'네...빨래줄이 이뻐서 찍고 있는데요...혹시 실례를 했나요?'라며 언덕을 내려다보니, 이미 코가 빨개지도록 술에 취해서 계단을 힘겹게 올라오시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비척거리며 올라오시더니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거 말고 내가 더 좋을 걸 보여줄테니, 그걸 찍어줘'

그리고는 주저없이 집으로 들어가셔서, 새끼 강아지를 한마디 들고 나오셨다.

'이거 우리 개가 낳은 새끼들인데, 이놈하고 좀 찍어줘'

이렇게해서 찍게 된 사진이 바로 이 사진이다.



Nikon F5,  Fuji Auto Auto 200 , Film Scan


아직 눈도 뜨지 못한 강아지를 들고 나오시면서 자랑을 하시는 할아버지.

사진은 강아지에 포커스를 맞춰서 한장, 할아버지에 맞춰서 한 장씩 찍었고, 여기에는 후자를 올린다.

딱 봐도, 혈종이 똥개임이 분명한 이 강아지를 할아버지는 자랑하고 싶으셨을까?

할아버지를 따라, 집에 들어가보니 어미 견 주위에 저렇게 눈도 못뜬 강아지 너댓 마리가 옹졸거리며 모여있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애견인인 나는 한참동안 강아지를 구경하고 나오면서, 사진을 우편으로 보낼테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할아버지께 부탁을 드렸다.

그리고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심성고운 나는 약속대로 사진을 보내드렸고, 그로부터 며칠 뒤에 이런 답장을 받았다.






Nikon F5,  Fuji Auto Auto 200 , Film Scan




편지를 스캔하다보니 글자가 시원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대략 잘지내는지, 그리고 강아지 한마리 줄테니 다시 찾아오라는 내용이다. (핸드폰 번호를 지우는걸 깜빡했는데, 어차피 번호가 바뀌었으니 상관은 없을 듯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애견인이라도 아파트에 똥개를 키우는건 겁이 나는 일이므로, 다시 찾아갔을 때도 강아지는 받아오지 않았지만 거듭 거듭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꼭 한마리 가져가라고 권하시던 할아버지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리고 이름이 부덕이라는 이 강아지의 어미는 지금까지 할아버지네 집에서 잘 지내고 있으며,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식빵이란다. 아, 생각난 김에 오랜만에 식빵 하나 사들고 부덕이를 보러가야겠다. (나는 부덕이 덕에, 소위 방송을 타게 되었고 EBS 창사특집 '서울은 사랑할 것이 많다'에 부덕이 할아버지도 출연하셨다)















부덕이 사진이다.

말을 참 잘 듣는 놈인데, EBS 방송 녹화할 때 부덕이 할아버지가 집 뒷쪽 텃밭에서 인터뷰를 하고 계셨는데, 호기심많은 부덕이가 담벼락에 고개만 빼곰히 내밀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걸 발견한 할아버지께서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하자 얼마나 신이 났는지 꼬리가 부서질정도로 살랑이며 올라왔다가 인터뷰하는 할아버지를 자꾸 치근대는 바람에 다시 할아버지가 내려가라고 하자, 두 말없이 내려가서 다시 담벼락 뒤에서 고개만 내밀고 구경하던 기억이 난다.


부덕이를 데리고 다니시던 할머니가 편찮으시면서 집에만 있었더니 살이 황소만큼 쪄버렸다고, 안타까워하셨는데... 요즘엔 다이어트에 성공했는지 궁금해진다.















Nikon F5,  Fuji Auto Auto 200 , Film Scan










2. 만리동 골목에서 만난 꼬마 아이
전에 썼던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대체로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여자한테 인기가 많은 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여긴 내 블로그니까, 뭐 좀 내 맘대로 쓴다고 해도 욕까지는 하지 말아.....주십시오...굽실굽실)

위의 부덕이 할아버지 집에서 좀더 올라가면 만리동 고개의 꼭대기에 다다르고, 그 길로 쭉 내려가면 마포 평생교육관(구. 마포도서관)으로 연결되는 골목이 이어진다.

그러니까....지금은 미친듯이 그리워지는, 다시 돌아가라면 정말이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보낼 수 있을 것 같은....[학! 생! 시! 절!]에 수업이 일찍 끝나서 만리동 골목길을 걸어간 적이 있다. 물론 FM2 카메라를 덜렁덜렁 들고서 말이다.

오후 3시쯤의 소의길을 걷고 있었을 것이다. 보통 그 시간의 골목엔 사람이 거의 지나 다니지 않는다. 거의 일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텅 비어버린 골목길을 마치 터줏대감이라도 되는 듯이 터벅 터벅 내려가는데, 한 아이가 문 앞에 앉아 마침 소꿉놀이를 하려는 채비를 갖추길래, 먼저 말을 건냈다.

"안녕"

"안녕하세요"

"몇 학년이니?"

"일학년이요"

"일학년이 벌써 끝나?"

"빨리 끝나요"

"아.. 그렇구나...오빠는 일학년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난다. (이 쯤되면 오빠가 아니라 삼촌이라고 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너 여기사니?"

"네"

"아니 그런데 왜 여기서 놀아? 학교가서 운동장에서 놀지"

"엄마가 여기서만 놀으랬어요"

"아. 그래? 엄마는 안에 계셔?"

"아니요...엄마는 일하러 갔는데, 가면서 여기서 놀으라고 했어요."

"그럼 내가 사진 찍어 줄까? 이쁘게 포즈 한번 잡아봐"

 

라고 .... 골드미스 꽃뱀도 한방에 넘어갈 말 솜씨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Nikon FM2, ILFORD 100 , Film Scan



처음 보는 내게, 문자 그대로 소녀다운 수줍은 표정으로 포즈를 잡아주던 아이에게 크게 손을 흔들어주며 사진은 꼭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골목끝을 돌아서는데 뒤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매일와"

매일 오라는 아이의 외침... 그 소리에 나는 매일 오겠노라고 선뜻 약속을 하고 말았다. 지킬 수 있는 약속은 아니지만 그렇게 대답해주고 싶었다. 진심으로 말이다.































3. 그리고 또 한 아이


이 아이에 관한 내용은 전에 이미 쓴 적이 있다.
 
[해당 글 보러가기 클릭]




























Nikon FM2, ILFORD 100 , Film Scan








4. 안나 아줌마


만리동을 다니면서 여러 주민들을 만났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 나 혼자 간 적도 있고 동생과 간 적도 있고 멀리 캐나다에서 놀러 온 친구를 데리고 부덕이네 집에 가서 얼음이 가득한 냉수도 얻어 마신 적있다.

만리동은 그렇게 내 시간 속에 여러 추억들을 남겨준 장소이다.

이러한 만리동, 아현동이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내가 즐겨 갔던 곳은 정확하게는 봉작길, 소의길 등이 있는 아현동이다. 만리동은 아현동보다 윗쪽 고개에 있다)

내게도 추억의 공간이 되는 장소인데, 그곳 주민들에게는 어떨까 싶은 마음이 들어, 보다 자주 아현동 길을 올라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갈 때마다 골목길은 재개발을 알리는 벽보와 찬반을 논하는 의견들이 난무한 곳이 되어버렸고, 한집 두집 비워져가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해떨어지면,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노는 횽들을 만나게 될까봐 무서운 골목이 되어버리는데까지 불과 대여섯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남들이 보면 나도 노는 횽으로 보이겠지? 어쨌거나 나는 100m를 12초에 주파하는 빠른 다리와 전국 창작 욕대회에 나가도 입상권이 확실한 창의적 욕 제작 능력이 있으므로..뭐...무섭진 않으나.... 카메라와 렌즈가 워낙 고가여서....음...정말 그래서 그렇다... 노는 횽이 무서운게 아니라....아니 뭐 좀 무섭긴해도...나도 비슷한 몽타주니까..뭐... --;)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가톨릭 세례명이 안나인 아주머니를 만나게 되었고, 나의 무기인 [친절함을 전해주는 '솔']음을 동원하여 그 분과 가까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안나 어머니께서 이사하시는 날까지 알게 되어서... 아무래도 이사 날까지 알게 되었는데, 그냥 있는 건 도리가 아닌듯 하여....결국 이삿날에 가보게 되었다.



카메라를 들고서!




그러니까 이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바로 그것 말이다. 카 메 라!

이 분의 이사가 이토록 중요한 건, 안나 어머님이 이 골목에서 마지막으로 이사가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Nikon F5,  Fuji Auto Auto 200 , Film Scan

집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Nikon F5,  Fuji Auto Auto 200 , Film Scan

거실의 모습.남아있는 물건은 놓고 가신 것들이다.









Nikon F5,  Fuji Auto Auto 200 , Film Scan











Nikon F5,  Fuji Auto Auto 200 , Film Scan










Nikon F5,  Fuji Auto Auto 200 , Film Scan

안방의 모습.





Nikon F5,  Fuji Auto Auto 200 , Film Scan














Nikon F5,  Fuji Auto Auto 200 , Film Scan

아들, 가족들의 역사가 담긴 사진 액자이다. 아드님이 수련회에 가서 찍은 사진, 졸업 사진 , 가족여행 사진들이 붙어있다. 가져가시려고 한 쪽에 놓아둔 걸 찍었다.







Nikon F5,  Fuji Auto Auto 200 , Film Scan

25년지기 이웃분과 이사에 관해서 이야기나누시는 모습이다





































































































































































































































































Nikon F5,  Fuji Auto Auto 200 , Film Scan

이사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사진을 찍도록 배려해주신 안나 어머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나는 염치없이, 아무것도 도와드린 게 없는데 25년지기 이웃분께서 차려주신 점심 밥까지 함께 먹을 수 있었다.

Nikon F5,  Fuji Auto Auto 200 , Film Scan

집이 이사짐으로 가득해서, 점심을 골목길 한쪽에서 상을 펴고 먹었다. 이 날의 메뉴는 쑥떡을 넣은 라면과 잡곡밥이었다.
















Nikon F5,  Fuji Auto Auto 200 , Film Scan

내 것까지 두 그릇 담으시는 중이다.













Nikon F5,  Fuji Auto Auto 200 , Film Scan

점심을 먹는데 아래골목에 사시는 25년지기 이웃분이 오셔서 커피를 챙겨주셨다.
















사진 왼쪽 아래에 있는 커피가 내 잔이다.




























5. 이제는 기억으로 떠올리는...

최근에 아현동을 지나간 적이 있다면 알테지만, 이제 이 골목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잠시 북아현동을 찍느라 한 눈을 판 사이에 아현동의 골목은 지상 위에서의 모습은 감춰지고 우리 기억 속으로 들어와버렸다.

언제 사람이 살았었던가 싶을만큼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게 쓸쓸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항상 그렇지만, 내 사진과 글이 거창한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또, 어줍잖은 연민의 감정을 불러내려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나는 담담하게 사진을 찍고, 점심을 먹으며, 이 동네 분들이 살아갈 날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지. 지난 것들에 대해서 애잔한 마음을 들추려고 하지 않았고, 실제로 이 동네 분들에게도 그런 감정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사람에게는 살아왔던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긴박한 법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없지만, 나는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쓴다. 다시 못 보는 장면들이니까...




내게 매일오라던 꼬마 아이가 살던 집이다. 이렇게 된 후에, 다시 이 골목을 찾아갔을 때, 소녀를 다시 만났다.

나는 한 눈에 알아보겠던데, 안타깝게도 아이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소녀들의 기억력이란 아이돌의 이름을 외우거나, 공주들의 악세사리에 신경쓰다보면 나 따위를 기억할 공간은 없기 마련이다.

'너 어디로 이사갔니?"
'어? 어저씨가 저 이사했는지 어떻게 알아요?'
'너도 아저씨되봐라....다 안다'
'저 윗 동네로 이사했어요'

거봐라... 단지 이 골목에서만 사라졌을 뿐이지, 이들의 인생이 사라진건 아니다. 그러니 제발, 이런 사진들 몇장 올려놓고 개 폼잡고 추억이니, 옛일이니 하는 시시한 감정은 이제 그만 꺼내도록 하자. (나 말고, 다른 사진쟁이들 말이다)















이건 저 위에 3번 남자 아이가 살던 집이다.









































이 동네에 살았던 사람들 모두, 어디가서든 잘 사시길 바란다. 나도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 여러분들도 잘 사시길 바란다. 즐겁게, 즐겁게...

그리고, 혹여 옛날 동네가 생각나거든 이 블로그에 와서 사진들을 보길 바란다. 여러분이 살던 동네에 애정을 가지고 있던 내가 어쩌면 여러분보다 더 많은 동네 사진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 터 위에 새로 이사 올 사람들도 여기에 와서 사진들을 보길 바란다. 예전엔 이러했었다고....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살았었다고 기억해주길 바란다.




* 덧붙이는 말

새 글을 쓰는데 시간이 일주일정도 걸렸다. 물론 이 글을 쓰는 데는 가만있자...한 다섯 시간 걸린 것 같다. 많이 걸렸다구? 그렇다. 나도 쓸 때마다 놀라지만, 정말 이 정도 걸린다. 사진 고르고, 사진 사이즈 맞추고 거기에 워터 마크까지 넣고 글 쓰려면 그 정도 걸린다.

그러면 나는 (일주일 X 24시간- 5시간)의 답동안 무엇을 했는가?

실은, 내가 이번에  쓰고 싶었던 주제는 소설 속의 서울이었다. 그래서 남산을 주제로 쓰고 싶었는데, 신이 봄을 알집으로 압축이라도 해버렸는지 날씨가 계속해서 어둡고 안좋아서 혹시나 좋아질 날을 기다리다보니, 늦어졌다. 그리고 계속 글을 안쓰는건 그래도 RSS로, 즐겨찾기로 어쩌다가 헛발 딛어서 오신 분들께 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틀정도 고민한 끝에 만리동 사진을 올린다.

다음엔 날씨가 좋아져서 진짜로 남산을 주제로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