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17. 11:51ㆍ서울여행 큐레이터
공언하건데, 나는 한반도를 벗어난 적이 없다. 그 흔한 제주도도 가보지 못했으니 이 땅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땅땅거릴만하다. (물론 이게 그럴만한 일인지는 모르겠다만)
하지만 한반도는 고사하고, 사는 지역도 구로구를 벗어난 적이 없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선 군생활이 즐겁기도 하였다.
구로구도 참 많이 변해서, 이제는 제법 자랑할만한 동네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일찍이 발전하기 시작한 구로 공단(명칭이 디지털 단지로 바뀌었지만)부터 시작해서 그 칙칙했던 연탄 공장을 배경으로 서있던 신도림역은 이제 스타벅스만 들어오면 강남과 비교해도 아쉬울 것이 없게 되었다.................고 한번 정도는 말해보고 싶었다. 내 블로그인데 이런 말 한다고 뭐라 하면 그건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최근엔 대형, 매머드, 초대박(인건 분명한거지?) 타임스퀘어가 영등포에 들어섰다.
한 번은 작은 모임때문에, 또 한 번은 운동화 사러, 그리고 한 번은 교보문고에 가기 위해 딱 세 번 둘러본 타임스퀘어는 갈 때마다 쓸모있는 공간이라고는 스타벅스와 교보문고 밖에 없다는 확신을 더해주지만 어쨌거나 그것이 우리 동네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긴 하다. (물론 이것은 영등포구에 있지만, 집에 갈 때 지나치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심리적인 동네이다)
이렇게 구로구와 영등포는 나날이 세간의 관심을 받으며 변화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유독 고집스럽게 눌러앉아있는 곳이 있다면 거기가 바로 문래동 일대이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문래동이 좋다.
변화한다는것, 발전한다는것이 반드시 더 좋은 쪽으로 기우는게 아니기 때문에 더디게 움직이더라도 시간의 흔적을 켜켜히 쌓아가는 동네가, 있던 거 한방에 까뭉개고 도깨비 방망이 내려치듯 새로운게 들어서는 단절된 동네보다 박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버스를 타고 신도림에서 영등포역쪽으로 가다보면 길가에 철강 공장들이 늘어서있다.
나는 늘 그 공장들의 뒷 골목에 뭐가 있을 지 궁금했었다. 무언가 새로운 서울의 이야기들이 나올 기분으로 적잖은 흥분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난 연휴에, 용기를 내어 다소 어두운 뒷골목을 다녀왔는데, 역시나 그곳엔 흥분되는 장면들이 나의 카메라에게 보여지기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어둡다는건 골목에 햇볕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지, 동네분들은 친절하게 안내해주셨다)
굳이 말을 붙이자면 단칸방 골목인 그 곳에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쪽방같이 쪽 하늘이 빛나고 있었다. 이 작은 하늘은 너그럽게도 햇볕을 내려주고, 비나 눈도 내려주고, 구름을 모아 더위를 가려줄 것이다.
하늘 아래,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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